오래 전 벗어놓은 내복처럼, 내 체취의 모양새를 간직한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음을 느꼈다. 형상이라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비천하게 만드는가. 차라리 나의 감정에도 형상이 각인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생각도 형상지워지는 순간 따분하고 고리타분해진다.

 

  시간이 흐르고 이것 저것 많은 것이 쌓였지만, 쌓여가는 모습만큼 비루한 것이 또 있을까. 무엇이든 버리고 치우지 못해 안달이다. 무언가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어려서부터 계속 되었다. 하지만, 버려도 버려도 끊임없이 파고들어오는 것은 늘어가는 검버섯마냥 혐오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벗어나고픈 욕망의 단면이다. 자기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개처럼 어디든지 내리고 오르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회전하는 개는 막상 그것을 모른다. 

 

  입을 반쯤 벌리고 서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본다. 그냥 그러다가 점점 굳으리라. 후회도 원망도 망상도 추억도 모두 내쉬는 숨 속에 산화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BLUE / 2022. 8. 25. 23:20